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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의무라는 족쇄? 1주택자 원칙이 부른 ‘거래 절벽’과 임대차 시장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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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명제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다. 하지만 이 당위성이 정책이라는 칼날이 되어 시장을 파고들 때, 현장은 예상치 못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최근 정부가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실거주 의무 강화와 1주택자 유지 기조는 단순한 투기 억제를 넘어 대한민국 부동산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실험이다. 이제 주택은 자산 증식의 통로가 아닌, 오직 몸을 뉘어야만 가치가 인정되는 ‘거주 전용 공간’으로 강제 재편되고 있다.


비거주 1주택자의 막다른 골목

그동안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던 핵심 축은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자산을 불려 나가는 과정에서 주택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실거주 여부가 자산의 생존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됐다. 정부는 투기용 1주택 보유자의 매각을 유도하며 비거주 1주택자까지 규제 가두리에 가두고 있다. 이는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명분 아래 실수요자가 아니면 집을 갖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다.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주거의 탈상품화 기조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전례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집을 사서 보유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들어와 살지 않을 집이라면 보유하는 것 자체가 세금과 규제의 징벌적 대상이 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제 포트폴리오의 전면적인 수정을 강요받고 있다. 주택의 투자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자산가들의 시선은 이미 금융 자산이나 상업용 부동산으로 옮겨가는 피벗 현상이 뚜렷하다. 가계대출의 구조적 안정성을 위해 실거주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금융 기조는 당분간 흔들림 없이 유지될 전망이다.

거품 제거라는 명분과 자산 양극화의 뒤편

실거주 중심의 설계는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시장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걷어내는 효과다. 부채로 쌓아 올린 가격 거품이 빠지면 시장은 금리 인상이나 경기 침체 같은 외부 충격에 훨씬 강해진다. 통계청이 2025년 말 집계한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90%를 넘겼음에도 무주택 가구 비율은 여전히 48%를 상회한다. 집이 남아돌아도 정작 내 집이 없는 이 기형적인 구조를 깨기 위해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이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리스크가 적고 확실한 상급지로 모여든다. 실거주 의무라는 족쇄를 차야 한다면, 차라리 가장 가치 있는 곳에 몸을 묶어두겠다는 심리. 이는 결국 단지별로 수능 등급 같은 서열을 매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급지와 상급지의 자산 격차는 이제 개인이 노력으로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 되어버렸고, 이는 자산 불평등 완화라는 당초 취지와 정반대의 결과물인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실거주 의무가 만든 유동성 함정과 거래 마비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시장의 경직성이다.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면서 매매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집을 팔고 싶어도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해 매물을 내놓지 못하거나,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버티기에 들어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파트 시장이 마치 거래가 끊긴 빌라 시장처럼 경색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은 거래를 통해 작동하는데, 거래가 없으니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조차 알 수 없는 정보의 비대칭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움직임은 시장에 출구가 없다는 공포를 심어줬다. 가격이 올라도 팔 수 없고, 내려도 살 사람이 없는 거래 절벽은 시장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는 결국 이사가 빈번한 직장인이나 학업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청년층의 주거 이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실거주라는 잣대가 노동 시장의 유연성까지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 셈이다. 거래세 완화 없는 보유세 강화는 시장의 동맥경화를 가속화할 뿐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전세 소멸과 월세 시대가 가져올 주거 사다리의 붕괴

임대차 시장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비거주 1주택자와 다주택자를 압박하자 서울 도심의 전세 공급원이던 민간 임대 물량이 자취를 감췄다. 집주인들은 본인이 직접 실거주를 하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있다. 여기에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조세 전가 현상이 임대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2026년 주거실태조사 예비 지표에 따르면 수도권의 월세 전환율은 역대 최고치를 매달 경신 중이다. 서민들이 전세자금을 발판 삼아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던 주거 사다리가 통째로 잘려나가고 있는 셈. 전세 물건조차 희소해진 시장에서 월세 부담이 커질수록 청년층과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민간 소비 위축과 사회적 이동성 저하라는 심각한 거시적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정책이 오히려 주거비 부담을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싱가포르식 모델 도입의 허점과 정교한 예외

정부는 싱가포르의 연 임대가치(Annual Value) 기반 재산세 체계를 주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세율을 극단적으로 차등화해 실거주를 강제하는 방식. 비거주 주택에 대해서는 기초 공제 혜택을 박탈하고 징벌적 세율을 적용함으로써 소유 구조의 실거주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계산이다.

거주 여부에 따른 재산세 차등 적용 시뮬레이션

구분거주자 (실거주)비거주자 (임대/공실)세 부담 차이 분석
세율 구조0% ~ 32% 누진세율12% ~ 36% 징벌적 세율비거주 시 공제 혜택 부재
산출 세액 (연 임대가치 15만 SGD 기준)약 2,550만 원약 4,960만 원비거주자가 약 2배 더 지불
과세 표준1.2만 SGD까지 비과세전액 과세 구간 강제 편입거주 여부로 소유 강제 전환

하지만 싱가포르는 전체 주택의 80% 이상을 정부 산하 기관(HDB)이 공급하고 통제하는 특수한 시장이다. 민간 공급 비중이 압도적인 한국에서 공공 임대의 획기적인 확충 없이 이 제도를 성급히 도입할 경우, 임대 물량 부족으로 인한 월세 스파이럴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또한 금융권의 전세대출 보증 제한 역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님 간병, 직장 발령, 질병 치료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실거주를 못 하는 이들에게 정교한 퇴로를 열어주지 않는다면, 정책의 정당성은 흔들리고 시장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두부생각

결국 핵심은 정책의 선명성보다 디테일이다. 실거주 의무라는 대원칙은 주거 정의 측면에서 옳지만,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유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모든 구멍을 막아버리는 압박 위주의 정책은 시장을 질식시킬 뿐이다. 보유세는 높이되 거래세는 낮춰서 비실거주 주택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는 출구 전략이 시급하다. 집이 투기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로막는 감옥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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