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안에서도 실거주 의무를 덜어주기로 결정하면서 서울 부동산 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자세한 전문 보기]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을 그대로 팔 수 있게 되자마자 시장에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매물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하지만 규제가 풀렸다고 해서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이요, 누군가에게는 자산 증식의 고속도로가 되는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남 아파트 매물이 하루 만에 400건 늘어난 진짜 이유
그동안 서울 강남이나 송파 같은 인기 지역에서 집을 사려면 반드시 4개월 내 본인이 들어가 살아야 했다. 이 규칙은 투자자들의 발을 묶는 가장 강력한 자물쇠였지만 이제 그 빗장이 풀렸다. 실제로 양도세 중과 유예가 끝난 직후 서울 전체 아파트 매물은 약 4.1%에 달하는 2,813건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시장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실거주 의무 완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아실에 따르면 발표 단 하루 만에 13일 기준으로 약 400건 이상의 매물이 다시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며 전체 매물 수가 6만 4천 건대를 회복한 것. 집주인들이 이제는 세입자를 억지로 내보내지 않고도 집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자마자 매도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 결과다.
말이 좋아 완화지 현실은 현금 부자들만의 리그
규제가 풀려 매물이 늘어났다고 해서 평범한 직장인이 강남 아파트를 집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서울 시장의 가장 큰 벽은 바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거대한 격차다. 서울 지역의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84㎡ 아파트를 사려면 매매가에서 전세금을 뺀 나머지 현금이 평균 9억 원 정도 필요하다. 강남권으로 눈을 돌리면 이 격차는 20억 원까지 벌어진다. 실거주 의무가 없으니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가 가능해진 것은 맞지만, 내 손에 현금 10억에서 20억 원이 없다면 이 시장은 애초에 접근조차 불가능한 영역이다. 결국 대출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에게는 이번 완화 조치가 사실상 남의 집 잔치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세금 82.5%라는 공포와 1억 원뿐인 대출 한도의 덫
집을 내놓는 사람들도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지금 다주택자가 집을 팔려고 하면 양도세와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최대 실효세율이 무려 82.5%에 이른다. 열심히 투자해서 집값이 올랐어도 국가에 대부분을 떼어줘야 하니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게다가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필요한 퇴거 자금 대출은 고작 1억 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전세 보증금이 수억 원을 훌쩍 넘는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1억 원이라는 한도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 때문에 시장에 매물은 나오는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돈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이면 계약과 퇴거 위로금 분쟁
현장에서는 법에도 없는 새로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실거주 의무 완화로 집을 팔려는 주인이 늘어나자, 일부 세입자들은 계약 갱신권을 포기하거나 집을 보여주는 대가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매수자가 실거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투자 수요가 붙으려 하니, 세입자들이 자신들의 퇴거 시점을 무기로 일종의 권리금을 챙기려는 모습. 집주인은 세금을 떼고 남는 게 없고, 매수자는 현금이 모자라 고민인데 세입자와의 분쟁까지 해결해야 하니 거래의 난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서울 시장은 눈치싸움과 국지적 이동의 반복
정부의 이번 완화 조치가 시장에 숨통을 틔워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전반적인 집값 하락이나 거래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대출 규제가 워낙 단단하고 보유세 인상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고액 자산가들이 강남이나 용산 같은 핵심지로 자산을 옮기는 선별적 이동 현상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세부적인 세제 개편안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매물 수치만 미세하게 오르내리며 서로 눈치만 보는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가 만약 현금이 부족한 무주택자라면 지금 당장 남들이 내놓는 매물 수치에 휘둘리기보다, 앞으로 나올 보유세 개편안을 확인하며 좀 더 긴 호흡으로 시장을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부생각
규제가 풀렸다고 신문에서 떠드는데 왜 내 집 마련은 더 멀어지는 것 같을까. 답은 간단하다. 정부는 길을 열어줬지만, 은행과 국세청이 그 길목을 지키고 서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 시장은 실력이 아니라 현금 동원력이 깡패인 시대다. 9억 원이라는 격차를 메울 수 없다면 차라리 청약이나 다른 대안을 찾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남들 다 강남 간다고 따라가려다가는 가랑이 찢어지기 딱 좋은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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