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세로 산다는 것이 이제는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 되어버린 시대다.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부동산 앱을 켰을 때, 내가 사는 동네에 매물이 단 하나도 없거나 자고 일어났더니 보증금이 수천만 원씩 뛰고 있다. 무주택자들은 서울 아파트 전세난으로 인해 매수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통계가 가리키는 지표들은 지금이 단순한 과열이 아니라 거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임을 증명하고 있다.
전세 수급 지수 180의 공포
부동산 시장에서 수급 지수가 100을 넘으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서울의 전세 수급 지수는 180선에 육박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집이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시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신규 전세 계약 평균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약 4,000만 원이나 올랐다.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 집주인들은 실거주 의무를 채우겠다고 들어오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려 고정 수입을 챙기기에 바쁘다. 결국 시장에 남은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고,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낡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서울 밖으로 밀려나는 엑소더스를 경험하고 있다.
15억이라는 마지막 동아줄
정부가 아무리 대출을 조여도 시장은 틈새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현재 서울 아파트 거래의 85% 이상은 15억 이하 단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왜 하필 15억일까. 그나마 서민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도로 끌어 쓰고 보금자리론 같은 정책 금융을 활용해 진입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강남권의 초고가 아파트가 시세를 주도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전세가 상승에 지친 30대 무주택자들이 중저가 아파트를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성북구와 노원구 같은 지역에서는 15억 이하 거래 비중이 99%에 달한다. 이건 투기가 아니라, 전세라는 불안한 뗏목에서 내려와 내 집이라는 단단한 땅을 밟으려는 본능적인 발버둥이다.
노룩 계약이 일상이 된 비정상적 풍경
요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을 보내는 이른바 노룩 계약이 성행하고 있다.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문을 열고 들어가 구조를 확인하는 짧은 시간 사이에 다른 대기자가 가계약금을 입금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남향인지, 물은 잘 나오는지, 곰팡이는 없는지 확인하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포기한 채 오직 등기부등본상의 권리관계만 깨끗하면 일단 잡고 보는 식이다. 이런 급박한 거래는 당연히 위험을 동반한다.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못해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지만, 지금 세입자들에게 더 큰 공포는 집을 못 구해서 길바닥에 나앉는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될 정도로 시장은 이미 과열을 넘어 광기로 치닫고 있다.
공급 절벽이 가져올 미래, 2026년은 시작일 뿐
상황이 이런데도 공급 대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2026년 주택 인허가 실적은 전년 대비 35.5%나 급감하며 바닥을 찍었다. 지금 당장 삽을 떠도 아파트가 지어지기까지 3~4년이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공급 가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비아파트 공급마저 전세 사기 여파로 위축되면서 모든 수요가 아파트로만 쏠리고 있다. 서울의 전세난은 경기와 인천의 가격까지 동시에 밀어 올리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경기도 신축으로 몰리고, 그 여파로 경기도 집값이 오르니 다시 서울 변두리가 저평가되어 보이는 악순환이다.
기다림의 끝은 하락이 아니라 포기일 수도
많은 전문가가 금리가 높으니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 경고했지만, 전세라는 실거주 가치가 매매가를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그 경고가 무색해진다.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좁혀질수록 전세 세입자들은 차라리 대출 이자를 내고 내 집을 사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지금의 시장은 단순히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경제 논리를 넘어섰다. 누군가는 이 폭풍 속에서 안전한 요새를 마련할 것이고, 누군가는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집값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서울에서 영영 멀어질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내 주머니의 현금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와 아파트 전세가가 오르는 속도 중 무엇이 더 빠른지 말이다.
두부생각
부동산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남들이 거품이라고 손가락질할 때 그 거품 속에 내 몸 뉘일 방 한 칸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서울 전세가가 4천만 원 오르는 동안 당신의 자산은 얼마나 성장했는가. 하락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논리는 달콤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노후를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지금의 노룩 계약과 15억 이하 쏠림 현상은 시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고, 망설임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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